-발달장애 아들을 어엿한 화가로 키운 최정숙 씨의 모정
5살 때 알게 된 아들의 장애, 실의에 빠지는 것도 사치였던 삶이라는 여정 속에는 많은 어려움이 동반된다. 그 중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삶은 고난이자 고통이기 십상이다. 장애인가족이 경험하는 가족스트레스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가정 파탄을 일으키는 등 부작용이 초래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사람간의 관계로 이루어진 인적 네크워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관계를 통한 소통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시대가 되면서 장애인을 둔 우리와 같은 가족들이 운신 할 공간은 점점 줄어만 가고 있다. 가장 불편한 장애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보통 시각장애인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시각장애인들의 일생도 쉬운 여정은 아니지만 일정부분 사람과의 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볼 때는 희망적이다. 나는 ‘자폐성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자폐성발달장애는 한마디로 사람간에 교류와 소통이 어려운 장애다. 당연히 사회의 일원으로 흡수되기 어렵다. 누군가가 돕지 않으면 일상 생활을 자력으로 영위하지 못한다. 언제든지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그건 또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폐성발달장애를 가장 이겨내기 어려운 장애라고 느끼는 이유다. 지금 나는 그런 아들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아들 남기가 자폐성발달장애라는 것을 안 것은 아이가 다섯 살 때였다. 나의 직장생활로 인해 당시 남기는 친지분의 손에서 자라고 있었다. 장애 판정 소식을 들은 난, 13년 9개월 동안 다녔던 정든 직장 Kt(정보통신사)를 퇴직했다. 5살이 되어서도 언어 소통이 안 되는 아들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엄마의 억척 본능이 작동한 것일까? 퇴직 후 본격적으로 전문기관을 돌아다니며 치료를 시작했다. 6개월 치료를 하니 다행히 본인 이름을 부르면 ‘네!’ 라고 대답 할 정도가 되었다. 평범한 아이들에겐 아무것도 그 ‘네!’라는 한마디가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이후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입이 열리기 시작했지만 그 속도는 더디고 더디었다. 20대 후반으로 접어든 지금도 남기는 억양이 특이해서 일반인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이다. 남기의 장애 증세를 몰랐을 때. 동네병원 소아과 의사에게 ‘아이가 5살이 되었는데도 말이 왜 이리 늦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의사는 말이 조금 늦는 것이라며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나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가서 각종 검사를 했다. 동의원소, 뇌파, MRI 등 많은 검사를 한 결과 언어 및 발달장애라는 소견을 들었다. 집에서 실의에 빠져있을 즘 군산에 인지치료 전문가가 온다는 소식을 담은 신문을 지인이 가져다 줬다. 상담을 해보라는 뜻에서였다. 당시에 남기는 손바닥을 보고 중얼중얼거리는 옹알이가 잦았고, 손으로 머리를 때리고 벽에 머리를 박는 등 이해못할 자해도 하고 있었다. 군산으로 가서 전문가를 만나보니 남기는 자폐의 전형적 증상이라고 말을 했다. 나는 그때 ‘자폐’라는 단어를 내 평생 처음으로 접했다. 그때의 심경을 표현할 단어조차 모르겠다. 앞으로 살아갈 미래가 암울하고 불안해 그냥 머리가 백지처럼 하얘졌을 뿐이다.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해도 소리치지 못했던 아이 그 날 이후 얼마간 내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남기는 언어로 먹고 싶다는 표현을 못했다. 딸기 그림카드를 가지고 다니면 딸기를 사주고, 식빵카드를 가지고 다니면 식빵을 사줬다. 말로써 먹고 싶다는 표현을 못하는 자식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던 무기력한 시간이 흘렀다. 남편과 함께 오래 고민한 후 남기를 초·중·고 일반학교로 보냈다. 비장애인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사회성을 기르고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지혜를 기르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지금도 장애인들을 향한 사회적 편견이 아직 있지만,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심했다. 하루종일 쉬지 않고 산행을 하는 기분이랄까. 남기를 학교에 데려다 주면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3월 한 달을 학교 복도에 그냥 서 있었다. 혹시 아이가 괴롭힘이나 당하진 않을까. 수업에 방해를 주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서 있었던 차가운 복도 위에서 몸은 얼어붙었고 나의 삶도 얼어붙기 시작했다. 비장애인 학생끼리도 학교폭력이나 왕따 문제가 심각하게 심각했던 상황에서 발달장애 남기의 처지가 어떠했을지 다른 이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많은 괴롭힘과 놀림을 감내해야 했다. 그렇게 당하고도 남기는 누구에게 하소연도 하지 못했다. 아들이 괴롭힘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주변 친구 등에게 들어야 했다. 그런 가족의 심정은 큰 아픔이었다. 허물을 벗는 아이 엄마! 부를 때 허물 하나 벗고 놀이터에 혼자 갈 때 허물하나 벗고 친구이름 하나 둘 기억할 때 허물하나 벗고 허물을 벗을 때 마다 엄마는 놀라고 언젠가 모든 허물을 벗어던지는 날
남기의 생일을 음악으로 축하해 준 고마운 선생님 당시 선생님들도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나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 남기는 초등학교 1학년 무렵 칠판에 있는 글을 알림장에 쓸 정도는 됐다. 글 모양도 또박 또박 예뻤다. 현장 수업을 간다고 하던 날 알림장에 김제벽골제로 현장수업을 간다고 써온 것을 확인하고 그런가 보다 하고 있던 차에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남기, 어떻게 해요?” 라고 물었다. 관리하기 곤란하니 남기를 보내지 말라는 뜻이었다. 죄인이 된 심정으로 “생각해 보고 말씀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다음 날 남기가 써왔던 현장수업 알림글에 빨강색 펜으로 두 줄이 그어져 있었다. 오지 말라는 표시를 그렇게 해서 보낸 것이다. 서러웠다. 눈물로 마음을 삭혔다. 일반학교에 보내서 나름 좋은 일도 많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에게 ‘안녕하세요’ 보다는 무조건 ‘사랑해요’로 인사를 시키는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이 언젠가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반은 한송이의 포도와 같다. 한송이에는 작은 포도알도 있고, 큰 포도알도 있다. 너희들은 모두 다르지만 우리는 한송이 포도와 같다며 아이들을 지도했다. 그 선생님 덕분에 5학년 한해 남기는 별 탈없이 학교를 다녔다. 장애인 학생은 담임선생님의 누구냐에 따라 생활에 큰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남기의 생일 날 선생님의 동의하에 케익 하나 들고 학교에 방문했다. 교실입구를 들어서니 의외의 배려에 감동을 받게 됐다. 선생님께서 관현악 음악의 선율을 배경으로 남기와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이번 남기의 그림 전시회 초대장을 보내기도 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다녀가셨다. 올해 환갑이신데 참스승의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때도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입학하고 통신문을 받았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반에는 이남기라는 자폐성 발달장애 아이가 있습니다. 학부모님들께서 관심을 가지고 모든 학생들이 이 아이와 잘 지낼 수 있도록 가정에서 지도 부탁드립니다.’ 나는 이 배려가 너무도 고마웠다. 비장애인에게는 비록 작은 배려일테지만 장애인을 둔 가족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어렵게 선택한 일반학교 12년 생활 중 이 두 분 선생님의 배려는 우리 가족과 남기가 지금까지 지탱하게 해 준 큰 힘이 되어주었다.
어느 날 남기의 등교를 돕기 위해 학교에 함께 갔더니 남기의 친구가 내게 귀띔을 했다. 아이들이 남기를 자로 때렸다고. 다음 날 담임선생님에게 아이들에게 할 말이 있으니 5분 정도의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선생님은 승낙했다. 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남기는 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야, 아픈 아이를 더욱 아프게 하면 어떻게 되겠니? 너희들이 좀 도와줄래?’ 5분의 시간을 허락받은 건 고마웠지만, 선생님의 역할을 학부모가 해야 하는 교육 현장의 현실이 서운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경기도에서 전학 온 운동선수 친구가 종종 남기를 끌고 다니며 놀리는 장난을 쳤다. 남기의 당황하는 모습을 즐긴 것이다. 급기야 얼마 후 남기가 상처 난 모습으로 집에 왔다. 그 친구가 남기를 심하게 놀리다 보니 남기가 고통을 견디지 못해 상대 아이를 꼬집었고, 그 친구가 분풀이로 남기를 때린 것이다. 양 측 가족이 나서면서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학교는 이런 소란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어찌어찌해서 다행이 잘 해결이 되었지만 우리 가족의 마음에도 상처가 났다.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든 학생들을 보듬어 가는 것도 교육의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2011년 장애인실태 조사에 따르면 자폐성장애의 88.3%가 1~4세에 발생하고, 지적장애가 83.7%가 1~9세 사이에 발생했다. 장애아를 적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 낙서를 좋아하던 남기에게 그림도구를 사주었더니 그림 그리면서 행복 느껴
자폐증상은 다양한 형태와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남기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의사소통은 어려웠지만 집에 있는 모든 책에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그것을 남기가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한 묶음 사주었다. 초등학교 때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에 미술과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고민하다 어렵게 담당선생님에게 남기의 그림 공부를 부탁했다. 흔쾌히 남기를 받아들여 준 선생님의 결정으로 남기 삶의 변화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초등학교 4·5·6학년 동안 남기는 그림 그리는 재미로 학교에 다녔다. 남기가 일주일에 두 번씩 교외에서 개인교습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이후 고3 때 까지 그림공부를 이어가게 된다. 남기는 그림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2006년 ‘전국 장애학생 미술공모대전 금상’, ‘2007년 전북 장애학생 미술 실기대회 최우수상’, ‘힘내라 대한민국청소년 전국학생 글·그림 공모전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남기는 그림에 몰두하는 내내 행복해 했다. 당시 실컷 낙서를 하라고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사주지 않았다면. 선생님에게 누가 될까봐 남기의 그림 공부를 부탁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남기의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을 거다.
이 모든 축복과 애정 어린 관심만으로 남기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남기가 고3 때 전라북도교육청에서 시행한 장애학생 일자리사업에 선정 되 특수행정실무사로 교육지원청에서 약 7개월간 일을 한 적이 있다. 일이라 봐야 사무실 청소하고 집기 정리하는 것이다. 당시 교육청으로부터 받은 문서에는 실습생으로 연말까지 일을 하면 다음 2014년에는 계약직으로 취업을 시켜주겠다고 나와 있었다. 남기도 사회적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로 2014년을 맞이했지만 도교육청으로부터 예산이 없어 더 이상 함께 일을 못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는 고용부담금 생색내기 위한 정책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회에 원망도 미련도 없다. 다만 자폐장애가 무엇이고, 지적장애가 어떤 장애인지 우리 사회가 알아주었으면 마음뿐이다. 내가 볼 때 남기는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거나 우체국에서 물품을 분류하는 일은 충분히 할 수 있다. 기억력도 참 좋다. 장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볼 수 있는 사회의 넒은 품이 아쉽다. 한 때는 복지연계형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도서관에서 찢어진 책 붙이는 일을 3개월 간 한 적도 있다. 남기는 쉬라고 하지 않으면 쉴줄도 모르고 열심히 일했지만 그곳에서도 일자리를 유지할 수 없었다. 난 이제 취업 기회를 찾을 생각은 없다. 그보다 남기가 행복해하는 일을 하게하자는 생각이 많다. 취업을 할 수 없다면 행복이라도 찾아주자는 마음으로.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만들어진 희망이랄까. 어디 변두리에라도 남기의 작은 화실을 하나 만들어 주고픈 꿈이 생겼다. <지난해 어렵게 국회를 통과해 올해 11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법이 있다. ‘발달장애인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할 법률’이 그것이다. 이 법은 ‘발달장애인이 자기 신체와 재산에 관한 사항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인 자기결정권을 규정하고 있다. 복지도 모든 장애인에게 등급에 따라 획일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학령기가 끝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매일 집에만 있어야 하는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고려해 평생교육기관을 지정하고 소득 보장, 거주시설 지원 등 국가가 할 것에 대해서도 형식적으로나마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현재 예산 책정 여부도 불확실하고 구체적 계획안도 없다.> 내 삶의 모든 것은 아들을 위한 예행연습이었다
나도 청소년기가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바로 위 언니가 지체장애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언니의 도우미 역할은 나의 몫이었다. 어쩌면 이런 나의 환경이 남기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이겨나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남기를 위한 예행연습을 했다고 할까. 지금 언니는 결혼도 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나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결혼한 남편과 경찰이 된 27살 남기의 형, 그리고 오늘날 전시회의 주인공 남기와 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사소통 하는 것도 사람의 권리라고 말한다. 그래서 청각장애인에게는 보청기나 수화가 제공된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점자를 통해 상실한 눈을 준다. 유독 지적능력에 장애가 있는 발달장애인에게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의사소통 도구가 제공 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은 집에서 할 일이 없다. 멍하니 앉아있거나 먹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상이다. 그래서 비만의 우려가 크고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형편 닿는 한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다닌다. 내 스스로를 남기의 로드메니저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매스컴을 통해서, 장애인을 둔 엄마들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 거나 ‘장애인의 삶은 마라톤이다’ 는 말을 가끔 듣는다. 나는 그런 우울한 말이 싫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여정은 멈춤이 없다. 때문에 지치고 버겁기 마련이다. 그 과정을 힘겨워하기 보다는 주어진 하루 속에서 아이 삶의 의미와 소소한 웃음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실이 고달프다고 먼 미래만 상상하다 보면 가슴만 먹먹해지기 때문이다. 나도 남기가 자라는 과정에서 수많은 절망과 시련을 함께 했다. 하지만 이젠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다. 아들에게 여자친구를 소개해 주세요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망이 최근에 하나 생겼다. 남기에게 좋은 여자 친구가 생기는 것이다. 남기 돌봄의 역할을 분담하고픈 양심불량 엄마의 욕심에서 나온 생각일지도 모르지.(웃음) 이왕이면 천사 같은 아가씨였으면 좋겠다. (웃음) 나는 여전히 매일 피곤하다. 집에 들어오면 세수도 못하고 코를 골며 잠들기 일쑤다. 물론 아침이 되면 언제 피곤했냐는 듯 벌떡 일어난다.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엄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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