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죽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의료사고방지3법 종현이법은 지난 7월, 예강이법이 지난달 29일 각각 시행됐다. 의사의 실수와 잘못으로 희생된 아이들을 바탕으로 만든 법이다. 그러나 이 법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기득권 집단의 하나인 의료계의 입김으로 인해서 아직도 외면당하고 있다. 백혈병을 앓던 종현이(당시 9살)는 2010년 5월 3년여간의 항암치료 마지막 치료 중 목숨을 잃었다. 정맥에 놔야 할 항암제 ‘빈크리스틴’을 허리뼈에 맞고 10일간 고통 속에 있다가 벌어진 일이다. 레지던트가 주사액 색깔이 비슷한 두 약을 바꿔 주사해 일어난 사고였다. 초등학교 3학년 예강이는 건강했다. 2014년 1월 새벽에 갑자기 코피가 멈추지 않아 서울의 유명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 의료진은 급한 수혈을 제때 하지 않고, 오히려 허리뼈에 주사바늘로 척수액을 꺼내는 요추천자 검사를 실시했다. 숙련이 덜된 레지던트 1, 2년차 2명이 번갈아 5번이나 척수액 추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예강이는 쇼크로 사망했다.
이 아이들의 가족들은 지속적으로 병원측에 사실해명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병원의 답은 “모르쇠”였다. 의료사고로 사망한 아이들은 이 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피해자 가족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종현이 예강이 가족의 끈질긴 싸움의 결과로 올해 3개의 법이 만들어졌다. 의료사고가 났을 때 이를 감추지 않고 모든 의료기관이 공유해 반복되는 의료사고를 막자는 취지의 환자안전법은 지난 7월부터 시행됐다. 그동안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비전문가인 환자가족들은 병원의 통보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의료기관이 진상규명을 거부하면 그동안 어찌할 수 있는 법적 대책이 없었다. 피해자가 의료분쟁조정원에 조정신청을 냈을 때 의료기관이 이를 거부할 수 없게 한 의료분쟁조정법이 지난 30일부터 개시됐다. 이는 예강이와 고(故) 신해철씨 이름을 따서 예강이법, 신해철법으로 알려져 있다. 인턴과 레지던트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해 의료사고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목적을 가진 전공의 특별법은 이달 29일부터 시행됐다. 위의 피해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레지던트에 의해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2015년 전공의 수련 및 근로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 4명 중 3명은 최대 연속 근무시간이 36시간을 초과한다. 36시간 동안 잠을 못 잔 의료진에게 안전한 치료를 바랄순 없다는 것이 법개정의 배경이다. 3개의 법은 의료사고 예방과 사후구제라는 측면에서 서로 연관돼 있다. 이 법들이 실행된다고 해서 의료사고가 전적으로 없어지진 않겠지만, 의료사고 발생률을 줄일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또한 그동안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아야 하는 피해자들에게 그래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는 취지도 중요한 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희망적이지 못하다. 보건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환자안전 전담인력을 배치해야 할 의료기관 959개 중 이 법을 준수한 병원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전담인력을 배치한 병원을 보면 536명의 전담인력 중 의사는 단 2명에 불과하다. 또한 병원들이 의료사고 관련 정보를 보고하면, 이를 복지부가 전국 의료기관에 주의경보를 발령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복지부가 환자안전 주의경보를 발령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이유를 묻자 복지부 관계자는 “아직 준비가 덜됐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법이 공포된 후 6개월 동안 준비기간이 있었고, 7월 시행 후 150일이 가까워오는데 아직 준비가 덜됐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의료분쟁조정법도 안착될 수 있을지 보장할 수 없다. 의료사고 강제 조정규정은 오히려 ‘환자 죽이는 악법’이라고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위험한 환자 자체를 의사들이 거부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환자의 의료권이 더 침해당한다는 것이다. 전공의 근로시간을 주당 80시간을 낮추는 전공의 특별법 또한 대형병원들이 준비가 덜됐다는 이유로 법 시행 후 1년 뒤에야 적용된다.
환자안전법 제5조1항은 ‘모든 환자는 안전한 보건의료를 제공받을 권리를 가진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병원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병원에서 과실을 인정한 종현이를 빼고 예강이 가족을 포함한 몇몇 피해자 가족들은 지금도 힘겨운 법정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병원들은 대형 로펌을 앞세워 “과실이 없다”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5∼6년이 걸리는 소송기간과 막대한 비용, 공고한 카르텔(담합)을 구축한 의료계로부터 그저 한 개인에 불과한 피해자 가족들이 직접 의료과실을 입증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를 위해 일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안기종 대표는 “예강이의 경우 의료진이 예강이 사망 이후 수혈 및 맥박 기록을 조작한 것이 드러났는데도 과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의료사고 피해자가 대형병원과 싸워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병원측도 그걸 노리고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해 아이들 가족들은 생계를 내팽개치고 어려운 싸움을 이어가는 있다. 오직 진실 규명과 진심어린 사과를 받기 위해서이다. 예강이 엄마 최씨는 "답답한 나머지 소송까지 하게 됐지만, 승산은 생각 못하고 있다. 다만, 예강이를 위해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택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 도처에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