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우리나라를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하시나? 미국이나 유럽처럼 많은 생명이 숨지는 묻지마 테러가 발생하지 않는다. 미국처럼 개인이 화기를 소지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국방 및 공공 치안 시스템도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는 편이다. 민간 보안산업 시장도 활성화되어 있고, 수많은 CCTV가 공공 및 민간 시설, 길거리 등에 즐비하게 설치돼 있다. 핸드폰 기지국이 안 통하는 공간이 없기에 위치추적 시스템으로 사람들의 이동 경로에 대한 추적도 신속하게 할 수 있다. 

보안은 선진국, 안전은 후진국

사고현장에서 긴급 구조활동을 하고 있는 119소방대원들. 사진/안전뉴스 DB

하지만 이는 안보 및 보안 측면에 불과하다. 사회적 안전 측면에서는 여전히 후진국적 면모가 많이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사회적 안전(safety) 측면에서는 정부와 민간의 관심이 많이 부족하고 투자가 소홀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나 2015년 메르스 사태는 정부의 무능한 지도력 탓이 크기에 논외로 한다고 치더라도,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사고,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분당 환풍구 붕괴 사고, 2015년 강화 캠핑장 텐트 화재 사고 등 재난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구조적 문제가 얽혀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최근 서울의 어느 오피스건물에서 소방서에다 소방 점검을 해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었다. 민원을 신청하면서 “건물의 계단 출입구에 있는 방화문을 열어놓은 채 소화기로 받쳐놓고 있어서 점검을 몇 번 부탁했지만 안전한 대책을 세워주지 않아 안 돼 늘 불안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2008년 2월21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5층 화재 당시 각 층의 계단실 방화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문 밑에 삼각형 나무를 끼워 열어둔 방화문 때문에 옥상층까지 연기가 바로 확산됐고, 야간 근무를 하던 공무원들이 옥상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나라의 안보 및 보안수준은 선진국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처럼 사회적 안전 문제에 관해서는 여전히 구조적으로 낙후한 후진국이다. 서구나 일본 등지에서는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도중에도 갑자기 소방훈련을 실시하는 등 어릴 때부터 생활 속 안전 학습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일상적인 안전훈련은 시간낭비쯤으로 여기는 안전불감증이 팽배하다. 실제로 경기도의 어느 고등학교 교장은 일본처럼 소방훈련을 자주 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가 학부모들의 반발로 결국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입시 공부를 하기도 바쁜데 아이들 피곤하게 그런 쓸데없는 훈련을 왜 자주하냐는 불만이었다.

안전사고는 언제 어느 곳에서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사회적 안전의 낙후함은 결국 소방인력으로 채워야 한다. 소방관은 각종 재난 현장에 투입되고, 또 응급환자 이송을 위해 출동할 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 갇힘, 등산객 조난, 한강 다리 투신 자살자 구조, 벌집과 고드름 제거, 멧돼지 습격 등 주민 안전을 위협하는 각종 안전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늘어나는 소방 서비스의 수요를 감당할 소방 재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소방헬기, 고가사다리차 등 값비싼 장비를 확보하는 데 고충이 크다. 정부는 국방·치안은 국가 시스템이지만 소방 시스템은 지방자치단체의 업무라며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자체에서는 각종 복지 예산을 배분할 곳이 너무 많아 유지·관리 기능인 소방에 투자할 예산이 부족하다고 한다. 현장에서는 경비가 소방 예산의 80%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노후한 소방 장비의 교체가 필요해도 남은 예산으로는 장비 구입이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크다.
 
소방관들의 처우 여전히 열악해, 개선 필요

작년에 정부는 담배세 인상으로 조성된 소방안전교부세 3141억원을 지자체에 배정해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도별로 나누면 51억~265억원에 불과하다. 그것도 소방 분야만이 아닌 도로·하천·공유림의 안전을 개선하는 사업을 포함하고 있다. 소방산업도 시장이 좁아 수요가 부족해 영세업체만 난립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서는 2014년 ~2016년까지 소방관의 안전한 현장활동을 위해 855억 원의 예산을 투입, 방화복, 안전장갑 등의 보호장비를 100%로 유지해왔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다른 지자체에서는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다. 

서울시만 해도 지난해 119 출동 건수는 52만8247건에 이른다. 전국적으로는 4백만건이 넘는다. 일평균 1447건, 초로 환산하면 60초마다 1번씩 출동한 셈이다. 지난 10년간 순직한 소방관이 179명, 공상자는 2244명이나 된다. 순직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소방관들은 계급별로 일정한 금액의 조의금을 모아 유가족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근무 기간이 짧은 젊은 소방관이 순직했을 때 정부가 주는 보상금으로는 남은 유가족들이 살아가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부양해 국민의 삶의 질을 안정적으로 지켜주는 것을 사회적 복지라고 한다면, 시민의 생명이 위급한 순간에 누군가 빨리 달려와서 시민들을 구해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안전 복지’라고 할 수 있다. 사회의 안전 복지망이 허술할 때 국민들의 삶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시민들의 안전한 삶을 지키려는 소방관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조금 더 개선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