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병들면 개인도 병이 듭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돈을 많이 벌고 오래 행복하게 살려면 오로지 돈만 추구해선 안된다. 돈을 추구하는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마련할 수 있는 감성을 길러야 한다. 모든 것을 돈의 효용성으로만 따지지 않기 위해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회학 박사이자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의 저자인 오찬호 작가를 피플안전에서 만나봤다.
오찬호: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 사회학 박사이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진격의 대학교>라는 책을 써서 강의를 다니고 있다. 책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는지 모르지만 돈을 벌지는 못했다.(웃음) 내 책이 ‘대한민국 멘토들이 가장 싫어하는 책’, ‘대한민국 CEO들이 결코 권하지 않는 책’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면에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그럴까? 나는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수원 연구원으로 있지만 무급 직책이다. 타이틀만 걸어놓고 있는 거다. 연구원은 유급 연구원도 있는 데 실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있다. 앞으로 내가 교수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책을 쓰는 게 좋다. 그렇다고 작가라고 불리는 건 좀 불편하다. 작가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소설쓰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 또 사회학자라고 하면 외부에서는 ‘학교에 재직하는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왜 학자냐?’라는 시선도 있고. 그래서 연구원으로 말하거나 프리랜서 사회연구자 재도권 사회 연구자라는 명칭도 생각해 봤는데 복잡하다. 다만 나는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에게 선사한 괴이스런 모습들? 엉망진창의 모습들, 그런 것들을 연구하고 폭로하고 싶다.” 피플안전 Q. 책을 집필한 동기는 무엇인가? 오찬호: “지난 세월 동안 한국 민주주의는 어떤 식으로든 발전해왔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만 강요하다보니 사람들의 감정 촉수가 그 방향으로만 뻗어 있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다가 받은 충격이 이 책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됐다. 대학 인권 수업이라는 게 본래 재미가 없다. 그런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필요성을 얘기하는 대목에서 한 학생이 갑자기 ‘날로 정규직이 되려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라며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 학생이 그런 말을 했다가 주변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그런데 나이었다. 오히려 다른 학생들도 그건 도둑놈 심보라면서 동조하는 것 아닌가. 이는 누군가 받는 차별이 부당하지 않다는 것이니, 결국엔 차별에 찬성한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피플안전 Q. 그날 만난 대학생들이 특별했던 것은 아닐까? 오찬호: “그 뒤 몇 년간 다른 대학생들을 만나며 경험한 바로는 그렇지 않다. 사회학자는 본래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 어떤 시대적 변화가, 어떤 사회적 환경이 젊은 친구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게 사회학자가 해야 할 일이다. ‘사회가 병이 들면 개인도 병이 들게 마련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 병든 개인보다는 사회에 초점을 맞춰 이 사회가 왜 병들었는지 원인을 알아내고, 어떻게 하면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지 궁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정의 공성정은 무임승차론이 아니다
오찬호: “나는 그 첫 번째 원인을 능력주의에서 찾는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경쟁시켜 줄을 세운 다음 이에 걸맞은 보상을 해주는 능력주의 모델에 기반해 발전해와다. 누군가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자기계발을 하면 그 자신도 성공하고 사회 전반도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자본주의를 작동시켜왔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것은 능력주의에 위배된다. 하지만 능력주의를 한 사회에 적용할 때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피플안전 Q. 그 전제는 무엇인가? 오찬호: “기회, 과정, 결과가 공정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기호의 공정성이 깨졌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이게 우리 모두의 안전도 위협한다. 누군가 강남3구출신의 서울대 진학률이 더 높다고 말해도 동의한다. 심판이 언제나 공정한 룰을 바탕으로 평가를 해줘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 결과의 공정성은 무임승차론이 아니다. 결과의 평등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보상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경쟁에 패배한 선수랄 해도 생활이 가능한 개런티는 지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경쟁에 뒤처졌다 해도 인간으로서 삶의 존엄성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자본주의라고 다 같은 자본주의가 아니다. 복지로 대변되는 사회안전망을 통해 누구든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게끔 결과의 공정성을 보완하는 나라들도 있다. 그런데 한국은 유독 외환위기를 계기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신자유주의를 활짝 받아들인 뒤 개인의 경쟁력만 문제 삼았다. ” 피플안전 Q. 자기계발 열풍은 강하지만 취업의 바늘구멍은 좁아지기만 한다. 이런 현상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는 말인가? 오찬호: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사회가 어떻기에 우리에게 이토록 악랄한 짓을 하나라고 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어쩔 수 없지하고 체념하면서 현실에 순응하려 든다. 이렇게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면죄부를 얻게 되니까 자본주의는 점점 더 포악해진다. 나는 비판이 사라진 대학 교육이야말로 능력주의와 함께 우리 사회가 차별을 찬성하게 만든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피플안전 Q. 대학은 지난 10년 동안 급속도로 변했다. 소위 돈 안 되는 학과는 폐지되고 경영학과 중심으로 변했다. 그 과정이 올바른가? 오찬호: “자본주의 사회가 권하는 능력주의나 자기개발을 개인은 생각 없이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조차 그러면 안 된다. 대학은 시장의 편협한 명령에 항복하도록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공적 기관이다. 대학이 경영학만 떠받들고 인문학은 찬밥 대접을 받게 됐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결론으로 어떤 세상이 도래했는지 우리 스스로 성찰해 보자는 것이다. 대학이 자본의 논리를 충실히 받아들였건만 청년들의 삶은 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피플안전 Q. 대학이 어찌되는 나랑은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찬호: “결코 그렇지 않다. 여덟 살짜리 딸아이가 역사책만 파고드는 걸 보면 당장 나부터 싫다.(웃음). 역사 공부라는 게 대학, 나아가 이 사회가 요구하는 효율성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부모로서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이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당장 내 아이가 읽는 책이 달라지고, 사교육 시장이 달라진다. 나와 멀리 떨어진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회가 병들면 개인도 병이 든다.”
피플안전 Q. 대학의 문제는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냐하는 문제로 직결된다는 말인데,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오찬호: “지금이 입시철인데, 진로에 대해서 학부모도 고민을 많이한다. 대학을 들어와서 학교를 다니다면 내가 어떻게 살 것이냐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그게 다 어떻게 내가 많은 자본을 획득할 것이냐는 답으로 귀결된다. 그 목적에 맞게 모든 걸 판단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결국 모두 치열한 경쟁의 정글 속으로 불나방처럼 몰리게 된다. 모든 것을 돈의 효용성으로만 따지지 않기 위해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개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보다 내치는 게 더 싸게 먹히는 현실 피플안전 Q. ‘돈이 안 되는데 굳이 인문학을 공부할 필요성이 있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오찬호: “맞다.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온 결과가 지금 우리의 상황이라는 거다. 모두 대박을 꿈꾸며 살아왔지만, 모두 대박을 이루며 살고 있지 않다는 거다.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문제 의식을 갖고 살아오지 않은 결과가 지금 상황이다. 이게 더욱 현실적인 거다. 일상을 살면서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 노출될 때마다 정작 자신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인문학이라는 게 모든 사람이 누려야할 보편적 권리를 방해하는 것들의 실체를 드러내어야 한다. 내가 그 집단 속에서 내지는 사회 속에서 지위가 낮다고 인격이 무시당하고 죽어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 처하면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요새 송곳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누군가 한 번 반드시 튀어나온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 뭔가를 알아야 튀어 나올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내가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하는 물음은 유효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자본을 전혀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돈을 많이 벌고 오래 행복하게 살려면 오로지 돈만 추구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돈을 추구하는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마련할 수 있는 감성을 길러야 한다. 이건 관념과 이론이 아니라 매우 실용적인 것이다. 그런 공부를 포기해선 안 된다. 자연스럽게 인문학적 감수성을 기르면 되는데 자꾸 의문을 갖고 좁은 잣대를 들이대니 진척이 되지 않는다. ‘이거 해봐야, 돈 안돼, 취업에 도움이 안돼’ 이런 사고 앞에서 조금 더 대범해질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함께 잘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더욱 실용적인 것 피플안전 Q. 인문학이라는 게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것이라면, 보통 사람들은 내가 피해자가 되느니 가해자가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공적 영역의 부재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오찬호: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런 일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구성원으로 채워진 사회가 있고, 함께 잘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는 구성원으로 채워진 사회가 있을 때 후자가 훨씬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구성원 개개인의 선택권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자처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본능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이득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 버린다. 이득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정말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된다. 유토피아란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사회가 현실적 유토피아가 아닐까. 그 순간에는 느끼지 못하지만 사회가 미세하게 변한다는 징표는 반드시 존재한다.” 피플안전 Q. ‘그런다고 세상이 변화하냐’는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오찬호: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나쁘게 변해왔다. 편향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라는 말에 흔들릴 필요도 없다. 우리 사회 자체의 균형추가 기울어져 있는 만큼 기존 가치에 의문을 품는 것이 결코 편향된 일은 아니다. 대안이 없더라도 언행이 다소 불일치하더라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끊임없이 비판하다 보면 그것 자체가 정치를 압박하고 법적 제도적 개선을 이끌어내는 수단이 된다. 부당함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면 대안이 마련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나 자신도 차별에 찬성하며 일그러진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공부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 노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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