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만명, 여러분은 이 숫자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의 일터에서 1년간 재해로 다치는 사람들의 숫자입니다. 이 중에서 2000여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은 국가적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지요. 최근 저자의 30년 경험을 바탕으로 안전레시피를 소개하는 책이 발간돼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이 책은 국내 배테랑 안전 전문가로 평가받는 이충호 안전보건공단 서울지역본부장이 대형사고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연구한 살아 숨쉬는 현장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희 피플안전에서 저자인 이충호 본부장을 만나봤습니다.

- 대형 참사 현장을 몸소 다니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고라면?

“여수산업단지 화학공장 사일로 폭발사고는 형식적인 작업허가가 부른 참사로 꼽힌다. 2013년 3월 14일 저녁 8시 50분경, 전남 여수산업단지에 소재한 D산업 여수공장에서 근로자 17명이 사상을 당하는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회사 생산품인 고밀도폴리에틸렌을 저장하는 사일로에서 용접작업 중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사고 발생 이틀 전부터 공장 전체에 대한 정기 대보수작업이 시작되어 공장 가동을 정지하고 정비보수 전문업체인 A기술에 의해 보수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상으로부터 약 8m 높이의 사일로에서는 근로자 6명이 내부 점검용 맨홀을 설치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에 사일로 상부에서는 9명의 근로자가 플랫폼 시공을 위해 비계 설치작업을 하고 있었다. 밴홀 설치작업은 사일로 동체에 드릴기로 작은 구멍을 만든 후 전기톱으로 맨홀 설치 부위를 잘라내고 아르곤 용접기를 사용해 맨홀을 부착하는 순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용접작업 중에 고열의 용접불티가 튀기도 하고, 드릴 및 드릴 및 전기톱 사용 중에 금속에 고열이 발생하기도 했다

폭발은 맨홀 설치를 위해 용접작업을 하던 중 용접불티가 사일로 내부로 튀면서 사일로 안에 남아 있던 가연성 분진에 착화되어 발생했다. 폭발 시 생성된 불꽃과 진동이 연결되어 있던 2개의 사일로까지 전달되었고, 맨홀 작업과 플랫폼 작업 중이던 근로자 중 6명이 목숨을 잃고 11명이 크게 다쳤다.

- 사고 원인은 무엇으로 분석되었나?

“몇가지 원인이 있었다. 이는 정비기간의 무리한 단축이 무를 화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가 부른 전형적인 참사였다. 우선 안전작업 허가가 형식적이었다. 이로 인해 용접작업 전에 분직폭발 위험장소인 사일로 내부의 가연성 분체를 제거할 기회를 잃었거나 퇴적 분체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눈감아 버린 결과가 빚어졌다.

사고가 발생한 사일로를 포함해 4개의 사일로는 30년 이상 된 설비이고, 2개의 사일로를 추가로 설치해 6개의 사일로를 하나로 묶어서 제품이 저장되도록 하여 운전한다. 공정이 변경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공정에서 2년 전에 사일로 폭발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 사고가 발생했거나 공정이 변경된 경우 위험성평가를 통해서 작업절차서를 개정하고 정비보수작업지침을 개정해야 한다. 위험성평가를 실시해 정비보수작업의 위험성을 찾아내 작업절차서에 반영했더라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던 것이다.

또한 위험정보를 모르는 관리감독자가 작업을 한 것도 사고의 원인이었다. 현장의 위험성을 확인하고 안전조치를 취하는 건 관리감독자의 당연한 업무이다. 하지만 당시 현장 관리감독자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으로 이들은 발주업체에서 사전 지식을 제공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일로 내부의 잠재 위험성을 몰랐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모든 것이 발주기업인 D산업이 기본적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에서 기인한다. 사일로의 소유자가 아닌 A기술 입장에서는 하청을 받은 공사범위 이외의 설비에 함부로 손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 이 사고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까?

“IMF 금융위기 이전에는 사업장 내에 대보수 정비작업처럼 위험성이 높은 작업을 총괄하는 공사과, 공무과와 같은 전문부서가 있었으며, 거기서 근무하는 공정안전전문가들이 작업을 관리했다. 이후 기업이 구조조정을 거치며 부서가 폐지되고 업무는 아웃소싱되면서 전문가 육성이 단절된 채 15년이 흘렀다. 이러한 경비절감이 기업에 무슨 도움이 되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우리는 안전해야 하고, 안전을 해야 한다. 몇 년 전 영국 안전보건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산업재해와 기업경영의 함수관계에 대하여 토론하던 중 사망사고 한 건이 발생했을 때 기업이 받는 손실규모에 대해 질문을 했다. 이 분야 전문가의 대답도 간단하고 명료했다. 사람의 목숨 가치를 금전적으로 산출하기도 어렵거니와, 이런 것을 원하는 기업은 안전을 하지 않거나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 수준의 안전을 하기 위한 명분축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경영자가 안전을 할 것인지 아닌지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업자가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고 작업하는 것은 죄이다. 관리자 안전관리를 하는 데 소홀하거나 소극적이라면 이는 범죄행위이다. 안전은 사업주의 의지와 관리자의 전문성, 그리고 근로자의 의식 수준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사업주, 관리자, 작업자 세 축이 원활한 소통을 통해 안전 수준을 높여갈 때 성과가 나온다. 기업의 성과가 매출 증가에 따른 이윤으로만 나온다고 생각하는 경영인은 안전관리 실패로 발생하는 손실규모가 매출이익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깨달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