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게 시행된 아동학대 특례법, 결과는 땜질처방?

거창하게 시행된 아동학대 특례법, 결과는 땜질처방?: 2015.01.27 18:48 입력 | 2016.01.30 12:33 수정

[초점]
 
어렵게 시행된 아동학대 특례법…국민 의식 부재, 관련 인프라 부족이 난관 
영국의 빅토리아 클럼비 사례를 곱씹어…정부의 의지가 중요함을 잊지 말자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유기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이 사건은 사회에 충격과 자괴감을 줌과 동시에 아이들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부끄러움을 어른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23일 경찰은 7세 아들을 무차별로 때려 숨지게 한 아버지 A(34)씨에 대해 미필적 고의 살인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 사건은 계기로 어렵게 시행된 아동학대 특례법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 것인지 살펴봤다. 아동학대와 관련된 영화는 많이 있다. 아동학대의 비참한 실태를 고발하는 영화에서부터 제도의 맹점을 비판하는 영화까지 아우른다. 그 중에서 ‘곤베이비곤(Gone Baby Gone)’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의 내용은 빈곤층 편모아래서 살던 4살짜리 아이가 어느 날 실종된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의 엄마는 미혼모로 마약을 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조용한 도시는 여자 아이 실종 사건은 떠들썩해지고 엄마는 매스컴의 집중 주목을 받는다. 
사립탐정 캔지와 제나로는 아이의 실종이 지역 마약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이 실정 사건에 대한 단서는 전혀 예상 외의 장소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아이의 학대를 보다 못한 경찰서장인 잭 도일이 보호하고 있었다. 잭 도일은 마약에 찌든 미혼모 아래서 아이를 두는 것 자체가 학대라고 판단하고 아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이 영화는 친부모라는 이유로 부모의 학대에 방치되는 학대 아동들의 현실과 그것을 제약하지 못하는 법의 맹점을 이야기한다. 
 
 




<table width="628"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628" align="absMiddle" src="http://www.allcsn.co.kr/PEG/14153357132158.jpg"> 
<div id="news_caption">▲영화 '곤베이비곤'의 한 장면. </div></td></tr></tbody></table>
 
 
2014년 발생한 칠곡 계모 아동 학대 사망사건은 국내 아동보호법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지역아동센터는 피해 아동가정에 총 645회의 아동보호서비스를 제공했음에도 학대가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는 학대행위자인 부모에게 오히려 아동안전 여부를 확인하는 등의 미흡한 보호체계가 줄곧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동 학대가 주로 가정 내에서 은밀히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시의 아동 보호체계는 전혀 실효성 없는 것이었다. 
 
이 사건과 함께 그해 10월에 일어난 서현이 아동학대 사건 이후 정부는 몇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애초에 소극적이었다. 법무법인 지향의 김수정 변호사에 따르면 “애초 영이(울산사건 피해자)가 사망한 이후 민간단체 관계자들은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았다. 민간단체들은 우선 정부의 진상 조사 의향을 확인했으나 정부는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따라서 그녀는 “정부의 무응답을 사실상 거절이라 판단하고 국회와의 연계를 통한 진상 조사를 모색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의 남윤인순 의원이 함께 하기로 해서 민간단체 관계자들과 교수 변호사 등이 자원해 진상조사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때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울산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 개선 위원회를 결성하고, 국회는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 및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13.12.31) 올해 들어서는 진상조사와 제도 개선 위원회 활동 중간보고서를 발표하고,(’14.1.24) 2월에는 6년 만에 5차 아동정책조정위원회를 개최해 이 자리에서 아동학대 방지 종합대책을 확정했다.(‘14.2.28)
 
이 종합대책을 통해 ‘아동학대 가해자 수사,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부모가 가해자면 친권에 제한을 두었다. 또한 아동학대 발생 시 경찰과 아동호보기관에서 즉시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종합대책도 여기저기서 맹점을 드러냈다. 핵심은 예산 문제다. 종합대책 속에 예산과 관련된 부분인 국가사무 환수, 아동보호전문기관 100개소 확충, 상담원 인원 확대라는 부분이 종합대책에 빠져 있었다. ‘돈’을 담당하는 기회재정부의 문제 의식이 미흡한 것이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의 남윤인순 의원은 “내가 알기론 총리실에서 돈 드는 것 빼고 보고하라고 했다고 하는데, 돈 없이 일이 되겠느냐? 어떻게 국가가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한 푼의 돈도 안 들이고 할 수 있느냐”며 기획재정부를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다. 
 
올해 4월, 드디어 아동학대 대책 당정협의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성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경찰청은 아동학대 신고를 강력사건과 같은 수준으로 처리토록하고 아동학대 신고 3회 이상 시 가해자를 구속 후 수사하는 등의 아동학대 예방 근절책을 강화했다. 여성가족부는 학대 피해 아동 보호 성과지표를 마련하기로 했다. 각 정당도 대책안을 발표했다. 
 
새누리당은 당내에 아동학대 근절 TF를 구성해 실태를 점검하는 종합 대책안을 마련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병헌 당시 원내 대표는 국회 차원의 아동학대 방지 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14.4.14) 박근혜 대통령은 “아동학대는 가정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사회범죄 행위”(’14.4.15)라며 강경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특례법, 시행은 했지만 넘어야 할 산은 첩첩산중
 
이처럼 당정이 발 빠르게 마련한 아동학대 특례법(이하 특례법)은 드디어 지난 9월에 시행됐다. 하지만 정작 그 후가 문제다. 이제 갓 태어난 특례법 앞에는 여러 가지 현안 문제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아동학대는 주로 부모의 의해서 저질러지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난 해 어느 가을날, 서울대병원의 응급실에는 4세 된 여자아이를 데리고 엄마가 내원했다. 아동의 상태는 심각했다. 얼굴에 심하게 멍이 든 채였다. 엄마 손을 잡고 들어오는 아동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려 있는 것을 의심한 서울대어린이병원측에서는 엄마와 아동을 각각 다른 공간으로 분리시킨 뒤 상담을 진행했다. 결국 엄마의 우울증과 분노조절부족으로 아동의 머리를 쳐서 난 상처인 것으로 밝혀내기도 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관장 장화정)의 조사에 따르면 학대 행위자의 80.3%는 부모고 친인척이 5.2%. 타인이 12.8%였다. 하지만 신고의무자 신고율이 주요국가에 비해 훨씬 낮은 편이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란 아동학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관련 종사자들을 말한다. 보육교사나 아동센터 관련 종사자라든지 아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동이 가정에서 당하는 일을 최초 목격할 기회가 많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학대신고의무자는 아동학대를 발견 시 즉시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수사관에 신고해야 한다.(제25조 제2항) 만약 아동학대를 신고하지 않을 경우에는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제75조 제2항) 
 
이런 법 조항이 명백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신고의무자의 신고율이 주요 국가에 비해서 훨씬 낮은 편이다. 미국은 59%, 호주 73.3%이며 일본만 해도 68%에 달하지만 한국은 반에도 못 미치는 34% 수준(2013년 통계)이다. 이는 신고의무자 교육이 허술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도 원인이 있지만, 남의 가정 문제에 깊이 개입하기를 꺼리는 문화적 풍토에도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의 2011년 아동학대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동학대를 신고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심각한 아동학대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가정문제로 간섭할 수 없어서’인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까지 아동학대를 사전에 예방하고 원가정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신고의무자의 신고율이 낮기 때문이다. 
 
국민의 소극적인 의식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인프라 부족이다. 무엇보다 아동학대예방사업을 수행할 관련 인프라가 많이 부족하다. 국내 지자체에 따라서 예산지원의 편차가 매우 큰 것은 심각한 문제점으로 보인다. 2013년 경상보조금 지원 현황을 보면 경기도는 25억 원 가량지만, 부산의 경우 2억 5천 9백만원에 불과해 거의 20배 차이가 난다. 
 
실제로 시행을 앞 둔 지난 5월, 세이브칠드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굿네이버스 등 12개 아동단체는 공동성명을 냈다. 성명서에는 “울산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계기로 재정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2015년 정부 예산안을 보면 과연 정부가 아동학대 예방 의지가 있는지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세이브칠드런의 한 실무자는 “아동보호에 책정된 내년도 예산은 196억 원이다. 이는 향후 지방자치단체들이 배정할 예산까지 감안하더라도 현상유지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특레법 시행 후 보호아동이 증대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장에서는 피해아동 전용 쉼터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전국에 있는 36개소 피해아동 전용쉼터 중 5개소에만 임상 심리사가 배치되 운영 중이다. 부족한 인력과 장소로 인해 현재 피해아동 중 20%만을 피해아동 전용쉼터에서 보호하고 있고, 그 외에는 청소년이나 여성쉼터, 일반양육시설에서 보호하고 있다. 2013년 피해아동 보호수는 1,994건으로 특례법이 시행된 9월 이후에는 증가가 예상돼 최소 10,000건 이상의 아동에 보호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아동의 조속한 피해 후유증 개입을 위해 ‘아동 인구수 15만명 당 1개소를 보유할 수 있도록 피해아동 전용쉼터를 확대 설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농어촌 등 소외지역을 우선 설치 지원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아동보호전문기관 및 상담원의 인력 부족과 경찰 공조 업무량 증가에 따른 피로 누적도 예상된다. 성수동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A씨(26)는 “솔직히 특례법이 개정된 게 우리에게는 무섭게 다가온다. 인력이 충원되지 않으면 그만둘 것을 생각한다. 도저히 힘들어서 감당하기 어려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실제 상담원 1인당 연간 업무량이 부산 84.4건, 광주 19.3건으로 지역별 편차도 매우 크다. 급여 차이도 커 연봉 기준으로 3천 2백만원인 기관이 있는 반면에 2천만 원에 불과한 기관도 있다. 그럼에도 최근 8년 사이에 고작 12개소가 추가 운영되는 데 그치고 있으며 향후 아동보호전문기관 확대 계획이 있는 지자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현황은 지방사업 이양 이후로 제자리를 걷고 있다. 
 
거창한 대안책 마련보다, 정부의 의지가 중요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제도 개선안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주체는 정부다. 따라서 특례법이 시행된 이후 발생될 현안 문제 해결은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의 모범으로 알려진 영국의 빅토리아 클림비 사망사건은 우리 정부의 의지에 점수를 매길 기준이 된다. 2000년 당시 8살이던 빅토리아 클림비는 차가운 욕실에서 손발이 묶인 채 배설물과 함께 쓰레기봉투 속에 방치돼 있었다. 병원으로 이송될 때 아이는 멍들어 있었고, 신체에 불구적 변형이 있었으며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였다. 곧 아이는 사망했다. 영국 정부는 15개월 동안 37명의 조사패널을 구성해 진상 조사를 진행했다. 
 
영국 정부는 빅토리아 사망사건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적어도 12차례 빅토리아를 구할 기회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빅토리아를 만났던 지방자치 단체의 주거정책과 직원, 이후 2곳의 홈리스부서, 지방정부의 4개 사회복지 관련과 경찰의 2개 아동 보호팀, 영국아동학대예방협회 산하의 센터들, 입원했던 2곳의 병원들은 빅토리아를 보호할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영국정부는 아동보호체계의 총체적 실패를 깨닫고 면밀한 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이 사건 이후 영국의 아동보호체계는 팽팽한 긴장감을 지니게 되었으며, 빅토리아를 학대한 이모할머니와 동거남에게는 종신형이 선고됐다. 우리의 경우 ‘영이’ 사건 전까지 불과 몇 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게 고작이었던 것을 상기해 보자. 
 
빅토리아 사건은, 영국처럼 아동보호법이 일찍 발달한 나라에서도 구태의연한 관료주의와 태만이 커지면 얼마든지 아동학대를 방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법안 마련으로 ‘할 일 다했다’고 손 놓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강조하는 이유다. 
 
 




<table width="68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680" align="absMiddle" src="http://www.allcsn.co.kr/PEG/14153493453254.jpg"> 
<div id="news_caption">▲빅토리아 클림비ⓒhttp://www.crimeandinvestigation.co.uk/crime-files/victoria-climbie</div><div><div id="news_caption">2000년에 발생한, 빅토리아 사건은 영국처럼 아동보호법이 일찍 발달한 나라에서도 구태의연한 관료주의와 방심이 커지면 얼마든지 아동학대를 방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div></div></td></tr></tbody></table>
 
 
유엔아동권리 협약은 아동보호에 관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아동은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 발달을 위하여, 가족적 환경과 행복, 사랑 및 이해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여야 함을 인정하고....(중간 생략)....아동에게 각별한 보호를 제공하여야 할 필요성은 1924년 아동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과 1959년 유엔총회에 의하여 채택된 아동권리선언에 명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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