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아픈 거예요' 명성진 목사의 삶

"아이들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아픈 거예요"<세상을 품은 아이들> 명성진 목사의 삶: 2015.04.20 13:34 입력

1회- 명성진 목사의 삶, 그리고 '세상을 품은 아이들'의 시작 얼마 전 화제 속에 막을 내린 tvN 드라마 ‘미생’의 배우들이 토크쇼 ‘택시’의 출연료 전액을 한 청소년단체에 기부했다. 그 단체는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문화예술 교육을 통해 통합적인 치유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 ‘세상을 품은 아이들(아래 세품아)’이다.  본드 중독자였던 아이들은 세품아에서 치유를 받고 음악 전문가, 청소년상담사가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음악을 선사하고 청소년들에게 희망 강연을 한다. 세품아는 사회혁신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해 사회혁신 모델로 연구되고 있고, 조만간 그 결과가 청소년 정책에 반영될 예정이다.  세품아는 경기도 부천에 소재하고 있는 예수마을교회라는 작은 교회 내에 위치하고 있다. 외형적인 면에서는 교회이지만 그 안에는 ‘사단법인 세상을 품는 아이들’이 있다. 이 곳은 아이들을 위한 삶의 공동체다. 그 뿌리 속에 교회가 있을 뿐이다.  세품아를 이끌고 있는 명성진 목사는 지난 해 심리학자 정혜신 박사와 함께 아쇼카한국 올해의 펠로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 워싱턴에 본사가 있는 아쇼카는 전 세계적으로 사회혁신가를 지원하고 발굴하는 민간 국제조직이다. 아쇼카펠로는 사회혁신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릴 정도로 사회혁신계에서는 세계적인 궈위를 지닌 상이다.  본지에서는 명성진 목사의 삶을 2회에 걸쳐서 싣는다. 그가 누구인지를 씨줄 낱줄로 살펴보면서 진정성있는 청소년 정책이란 과연 무엇인지 돌아보고 그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table width="50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500" align="absmiddle" src="http://www.allcsn.co.kr/PEG/14295048032035.jpg">▲명성진 목사는 지난 해, 사회혁신가를 지원 발굴하는 민간국제조직인 '아쇼카한국 올해의 펠로'로 선정됐다. </td></tr></tbody></table> “여기는 누가 온다고 해도 전혀 청소도 안 하고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하하. 여기 아이들이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촬영은 되도록 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경찰서에서 사진을 워낙 많이 찍어서요. ” 세품아에 방문하자 명성진 목사는 목덜미를 긁적이면서 넌지시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공간이 깨끗한데요. 괜히 누가 온다고 서둘러 보여주기식의 청소를 하는 것도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기자가 이렇게 얘기하자 명성진 목사가 웃으며 말했다. “누가 온다고 해서 괜히 아이들에게 청소를 시키는 것도 못할 짓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면 모르지만, 내가 시키는 건 좋지 않은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손님 온다고 해도 평상시 모습 그대로 보여줍니다. 잠옷 입는 모습. 우리가 집에서 그러지 않나요? 시장이 온다고 해도 안 합니다. 하하” 그의 말투에는 가식적이지 않은 성품이 묻어났다. 목사님이라서 가능한 것 아니냐? 그동안 자원봉사 선생님들로 운영되던 세품아에서는 2년 전부터 선생님 공채를 시작했다. 공채 할 때 일탈 유경험자 조건을 단다. 일반적으로 청소년복지가가 그런 자격을 지녀야하는 건 아니지만, 세품달에서는 일탈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세품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명 목사에게 이렇게 묻는다. “목사님이 가지고 있는 방식이 강력하긴 하다.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건 확신한다. 근데 중요한 건 그건 목사님이라서 되는 것 아니냐? 이게 일반화 되어서 갈 수 있느냐? 직업으로 가졌을 때도 그런 헌신력을 지니는 게 가능하냐?” “삶의 이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학교 밖 아이들을 보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제가　볼 때는 이상하지 않거든요.” 명 목사의 말이다.  세품아는 지금 실험대 위에 서 있다. 세품아가 가지고 있는 솔루션이 독특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체계화되고 결국엔 확산될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학자들의 연구 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세품아의 시스템이 학자들의 연구 대상으로 분석됐고, 어느 정도 결과물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과연 세품아의 노하우가 얼마냐 복제될 수 있는가이다. 또 다른 명성진이 없는 한 불가능하다라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가능하다. 명 목사도 처음엔 그런 생각은 못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면서 그 부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그래서 3월 달부터 아이들과 함께하는 토크콘서트 전국 투어도 준비하고 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핵심 노하우는 결국 아픔의 경험을 지니고 있는 선생님 그 자체입니다. 아이들을 업무의 일환으로 여기지 않고 공감하고, 그들과 비슷한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구축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명성진 목사의 말이다.  “들어온 지 6개월 밖에 안 된 여자선생님이 아이들 속으로 쑥 녹아 들어가서 아이들한테 거의 형 소리를 들었어요. 이유가 뭘까요?. 그 여자 선생님의 인생 한 편에 그런 성장 배경이 있었던 거죠. 그는 아이들을 전혀 이상하게 보지 않아요. 저도 어린 시절에 그런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감자만 보면 토하고 싶어 <table width="40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400" align="absmiddle" src="http://www.allcsn.co.kr/PEG/14295048380094.jpg"></td></tr></tbody></table> 그는 60년대 후반 강원도 시골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안에는 먹을 게 없었다. 그는 “먹을 게 없었다고 말하면 요즘 세대에겐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고 운을 뗐다. 그의 세대는 이촌향도의 정점에 있던 세대였다.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농촌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도시로 갔다. 초등학교 졸업하면 모두들 돈을 벌려고 산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던 시대다. 그래도 먹고 살기는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가족은 여름이면 강원도 수해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때는 농사조차 지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어렸을 때 면사무소에서 준 밀가루만 먹고 살았다. 동네 이웃들이 십시일반 걷어준 쌀로 겨우 끼니를 채웠다. 한 2년 동안은 감자만 먹기도 했다. “아직까지 밀가루를 못 먹습니다. (웃음) 칼국수는 먹기 시작했는데, 수제비를 여전히 못 먹어요. 특히 감자를 아직도 못 먹어요. 먹으면 옛날 생각이 나서 토할 것 같아서요.(웃음)원래 모양에서 변형된 감자는 먹을 수 있는데, 동그란 모양의 감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다. 감자 아니면 고구마였다. 고구마 도시락이라도 가지고 가면 다행이었다. 운동화는 언강생심, 1년 내내 고무신만 신고 살았다. 온 가족이 지독한 가난을 피해 인천으로 이사왔다. 그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 1976년 무렵이다. 하지만 가난의 가위눌림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5 평(m²)이 안 돼는 골방에 일곱 식구가 살았다.  시골에서는 비록 가난했지만, 어린 나이가보니 그는 그저 자유로움이 좋았다. 일곱 누나의 막내 외아들인 덕분이었는지 가족으로부터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의 투정도 누이들은 탓하지 않았다. 쌀이 없으면 누이가 칼국수를 끓여서 옆 집에서 쌀과 바꿔왔다. 그러면 그는 아들이라는 이유로 먼저 먹었다. “그럼 누이들도 먹고 싶어서 이렇게 쳐다보던 기억이 납니다. ” 이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누이들에 대한 연민과 애처로움의 감정이 교차했다. 눈에는 눈물이 촉촉하게 맺혔다.  그의 부모님은 나이가 많았다. 50넘은 나이의 아버지는 끝끝내 그를 낳았다. 내리 여자들이었던지라 아들 하나는 꼭 보고 싶었던 것이다. 가난한 집 외아들. 그는 그게 싫었다. 청소년기에 그를 방황하게 한 건 가난에 대한 분노였다. 부모님은 어떤 농장으로 돈 벌러 갔기에 누이들이 그를 길렀다. 부모님이 있으되 결손가정처럼 살았다. 인천에 와서는 적응을 못 했다. 고향에 있을 때는 한 반에 학생이 스무 명이 안 됐다. 하지만 친구들 간에 높고 낮음은 없었다. 형편이 비슷비슷했고 인간미가 남아 있던 마을이니까. 특별히 옷을 좀 깨끗하게 입은 아이는 군인 가족었다. 보통 아이들은 그냥 고무신을 신었고 런닝셔츠 하나 입고 학교 다녔다. 그게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인천에 와서는 고무신 신고 학교 갔다가 외계인 취급받았습니다.(웃음)” 도시에서 그의 존재감을 박탈당했다. 적응이 힘들었다. 학교에 들어가니까 그의 번호가 77번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오전 오후 2부제 수업이었다. 77명이 오전에 수업을 듣고 가면 오후에는 다른 77명이 또 교실에 들어오는 거다. 그렇게 되니까 한 학교에 학생들이 거의 5천명에서 8천명을 웃돌았다. 바야흐로 베이비붐 세대였다. 서울에 어느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만 명이 넘기도 한 웃지 못할 시절이었다.  시골학교에서는 그가 공부를 제일 잘 했다. “제가 트리플 A형 성격이에요. 극단적 소심.(웃음) 누이들 틈에서 자라서 여성적인 성격이 강했어요.” 수많은 학생 속에서 투명인간처럼 묻혀 버리는 무존재감 속에서 갈 길을 못 찾았다. 게다가 학교 교과 진도가 고향에서와는 많이 달랐다. 시골이 많이 느렸고 인천이 빨랐다. 시험을 보면 배우지 않은 문제가 나왔다. 시골에서 받은 ‘수’로 채워진 성격표를 보고 흡족해 하던 인천에서의 담임 선생님은 첫 시험 후 그를 향해 혀를 끌끌차면서 말했다. “촌 놈이 다 그렇지” 담임 선생님은 기미가 덕지 덕지 묻어있던 얼굴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 표정은 소심한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때 사귀게 된 친구는 세월이 흘러 유명한 조직 폭력배 보스가 됐다. 하지만 당시의 그 친구는 그에에 유일한 등대였다. 그의 보디가드였고 그의 또 다른 영혼이 되었다. 그 친구를 의지했다. “저희 때는 아이들이 너무 많으니까 운동회날 한 두명 빠져도 몰랐습니다. 그 친구랑 학교 수업 땡땡이치고 놀러다녔어요. (웃음) ” 난생 처음 지하철 1호선 타고 서울도 가봤다. 그 당시에는 초등학생이 부모님 없이 지하철 타고 동네를 벗어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버스 타는 것 조차도 두려워하던 때였다. 그 친구와 다니면서 뒤늦게 도시와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동시에 방황이라는 값비싼 대가도 주어졌다. 학교 공부와도 담을 쌓았다.  어느 날 선생님이 가정통신문을 나눠주면서 그를 불렀다. “야 정명진” 담임 선생님이 자신의 반 학생이었던 그의 이름을 제대로 몰랐다. 1년이 지났을 때였다. 학교에서의 그의 존재감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선생님과 정서적 교감을 인간끼리 나눌 수 있는 진정성의 방편이라 여겼던 그에겐 충격으로 다가왔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꼈다. 초등학교 시절은 그에게 암흑이었다.  고향에서 학교 선생님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제 아버지도 술을 마시다가 선생님이 온다 그러면 벌떡 일어날 정도로 당시 교사의 권위가 상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선생님으로부터 무시를 당하니까 나의 존재 가치를 상실한 것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방황하고 거칠어졌다. 그는 스스로 약하고 돈이 없어서 무시당하는 게 싫어서 거친 친구들만 만났고 그럴수록 그 자신도 더욱 더 거칠어졌다. 그는 타고난 운동신경이 있었다. 아버지가 천하장사였다. 팔씨름을 하면 반에서 이길 사람이 없었다. 그런 깡따구는 그를 일탈된 또래들 속에서 소영웅으로 만들었다. “그 무렵 저도 이 곳에 오는 아이들처럼 살았습니다.” 그의 최대 방황기였다. <table width="50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500" align="absmiddle" src="http://www.allcsn.co.kr/PEG/14295049326686.jpg"></td></tr></tbody></table> <div align="justify"><table width="50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500" align="absmiddle" src="http://www.allcsn.co.kr/PEG/14295048626957.jpg">▲지난 해 경기도 의왕에서 열린 '위기 청소년의 눈물과 희망을 나누는 토크콘서트의 한 장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송호창 의원이 주최하고 비영리 민간단체 '세상을 품은 아이들'과 '위기청소년의 좋은 친구 어게인'이 주관한 이 행사에선 청소년과 어른의 솔직한 대화가 이어졌다. 이 자리에선 세품아에서 치유받은 아이들의 음악 콘서트도 열렸다.</td></tr></tbody></table></div> 선생님에게 소외감 느껴 일탈의 길로 고등학교 때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선생님을 만났다. 중학교 3학년 1학기 때 시험을 봤는데, 점수 형편 없어 회초리 세례를 받았다. 종아리가 부어올라서 바지가 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맞았다. 그게 내겐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아무리 체벌이 일상화되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마음 속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왜 맞아야 하는 거지? 지금 나는 자학하고 있는 것 아닐까?” 몇 날 몇 일을 방 구석에 있다가 나왔다. 접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연합고사를 몇 개월 앞둔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공부에 집중했다. 지난 10년의 모의고사 문제집을 구했다. 공부에 탐닉했다.  연합고사 점수는 잘 나왔다. 소위 남들 가기 어려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새로 생긴 비평균화 고등학교인 서인천고등학교였다. 그 해 50명이 넘게 서울대에 들어간 걸 자랑하던 학교였다. 남들은 명문고라고 여길지 몰랐지만, 그는 황당했다. “나중에 그 곳은 최초의 어떤 기록을 내기도 했어요. 체벌했다고 선생님을 경찰에 신고한 국내 최초의 일이 거기서 일어났습니다. (웃음) 글쎄요..명문이라.. 아이들의 인성을 교육시키는 곳이 진정한 명문 아닐까 싶어요.” 그가 황당해 한 이유다.  그 곳에서 또 한 차례 인생의 변화를 겪는 일이 있었다. 공부는 곧잘 해서 반장도 도맡았지만, 중학교 시절의 습관은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동네 노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다. 어느 날, 27살의 패기넘치는 젊은 여자 선생님이 부임했다. 그 선생님은 매일 쪽지 시험을 봤는데, 그는 전날 친구들과의 어울림에 빠져 공부를 하나도 못했다. 그래서 백지를 냈다. 그 선생님이 회초리로 그의 손을 세게 때리면서 소리쳤다. “너는 그런 애가 아니야!!”  또 다시 충격이었다. 수업 시간 내내 울었다. 교무실로 찾아갔다. “선생님에게 죄송합니다.” 선생님이 말했다. “너 정말 잘할 수 있는 아이라는 거 알아. 너 정말 괜찮은 애라는 거 알아” 선생님에게 짓밟혔던 자존감을 그 선생님이 회복시켜 주었다. “선생님 실망시켜 드리면 안 돼!” 굳게 마음을 먹고 그때부터 일탈된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었다. 학교 생활에 충실하기 위해 교내 중창단에 가입을 했고 좋은 친구들과의 교감을 형성했다. “그 친구들을 지금도 만나고 있어요. 매우 지적인 친구들이지요. 그때부터 음악을 했어요. 지금도 1년에 한 번 정도 모여서 밤새 수다떱니다. 다들 술은 전혀 입에 안 대요. 지금 목사도 있고 대학교수도 있고 모교의 교사도 있고. 사업가도 있고 엔지니어도 있고요.” 그 친구들로 인해 건강을 회복한 탕아가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떠났다. 아버지란 존재는 그에겐 원망의 존재였다. 그에게 아버지는 오직 빈곤과 오버랩되는 존재였다. ‘아버지의 무능함이 우리 가족을 가난의 질곡으로 밀어 넣었어.’ 쉴새 없이 노동을 하던 늙은 아버지의 주름살 앞에서 그의 원망은 부질없고 또한 철없었다. 80년대 초반 어느 날, 비가 많이 오던 날 학교를 가야했는데 차비가 없었다. 비를 맞으며 걸어서 학교에 갔고, 하교 때도 비를 맞으며 터덜 터덜 집으로 오고 있었다. 집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아버지가 찢어진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늙은 아버지가 동그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왜 차를 안 타고 비 맞고 오냐?” 그 말이 답답했다. 아버지가 받쳐든 우산을 탁 치고 집으로 혼자 왔다. 우산 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다. 무능력한 모습. “50대 때 저를 낳았으니 제가 중학교 때는 이미 할아버지였던 것이지요.” 어느 날 학교에 도시락을 안 가져갔다. 점심시간이 될 무렵 누군가가 교실 문을 두드렸다. “선생님, 우리 성진이 도시락을 안 가져와서요. 좀 전해주세요.” 옆 자리에 있던 친구가 그를 돌아봤다. “야, 성진이 너희 할아버지 오셨는데.”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짜증을 냈다. “아버지가 학교 오는 거 너무 싫어요. 다음부터는 오지 마세요.”  아버지는 놀란 눈으로 그를 멀뚱히 바라봤다.   그는 아버지를 미워했다. ‘아버지의 무능함이 나를 이렇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떠날 때까지 용돈 달라는 얘기를 한 번도 안 했다. “소심한 복수였습니다.” 아버지가 떠나기 전 음주하고 울면서 말했다. “난 너 아버지도 아니냐 왜 용돈도 안 달라고 하냐?!” 아버지는 평소 매우 무서운 사람이었다. 남들한테는 입이 걸었고 욕 한 번 하면 매서웠다. 그럼에도 그에겐 욕을 한 번도 안 했다.  고3때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왔다. “성진아 아버지가 위독하시단다.” 아버지는 3일 전부터 입으로 코로 항문으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병원으로 갔을 때는 이미 몇 일 동안 말도 못하고 피만 쏟아내고 있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희미하게 쳐다보더니 이리 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성진이 밥 먹었니?. 집에 가거라.” 힘없이 손을 내저었다. “아버지, 나 집에 갔다 올게” 그가 집에 도착하자마가자 아버지가 엠브란스에 실려서 왔다. 의사가 말했다. “이제 임종하세요. 임종은 집에서 하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어제가 아버지 기일이었습니다. 돌아가시고 나니 아버지가 얼마나 저를 사랑했는지에 대한 기억밖에 없더군요.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찾으려고 했는데 못 찾겠는 거예요. 아버지에게 엄청난 죄스러움도 있었고. 장례 치르고 나니 정신적인 혼돈이 오더군요.” 혼돈의 와중에 또 다른 불행이 실망감을 안겼다. 오래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결혼까지 생각하던 친구였 정말 좋아했던 친구였기에 헤어지면서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한 달 동안 세수도 안 하고 살았다. 옷도 교련복만 입고 다녔다. 그 해 대학 입시를 포기 했다. 몇 개월 후에 우울증이 어느 정도 극복됐다. 모든 걸 잊으려고 입시 공부에 매진했다. 새해 1월부터 입시 시험 보는 날까지 학원에 제일 먼저 나가고 제일 늦게 나오는 재수생이었다. 친구들과 모여 밤새워 술을 마시고도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도서관에 갔다.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합격했다. 대학교 강의실에서 사회적 모순에 눈 떠 “저는 그 생각을 지니고 있었어요. 우리가 이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과 외교관이 되어서 정말 세상을 자유롭게 누비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해 보니 80년대 말 격동기에 제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대학가 분위기가 운동권 일색의 분위기였고 그때 저도 사회구조적 모순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 그 모순은 아버지의 모습과 오버랩됐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물려준 자산은 성실, 정직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술이 떡이 됐어도 새벽 4시면 반드시 일어나서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가셨습니다. 꼴을 베어 와서 짐승들 먹이 주고 8시 30분이면 지게 내려놓고 마루에 딱 앉으면 밥상이 딱 준비돼 있었죠. 아버지 오신다! 그러면 모든 가족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우리한테는 게으름이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은 개념이었어요. 자기가 돈이 없어도 불쌍한 사람들보면 돈을 털어서 줘야 겠고.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왜 평생 가난했을까? 아버지는 평생 노동을 했는데. 그리고 어머니는 자식 먹여살리려고 채석장에서 여자의 몸으로 돌 깨고 나르는 일을 했는데 왜 가난할 수밖에 없을까? 그것이 사회구조적 모순이라는 틀 속에서 이해되고 해석된 거죠.” 정치학과에서는 프로레탈리아 계급의식을 배웠다. 그때 손호철, 정영태, 손학규 교수가 강의를 했다. 그는 손호철 교수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학회에 들어가서 광주 이야기를 접했다. 그때 광주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던 때다. 그는 더 열성적으로 운동에 참여했고 어느새 학생 운동의 선봉에 있었다. 그의 분노를 다 쏟아부었다. 20대 청년기를 분노의 화신으로 살았다. 경찰에 잡혀가고 재판 받고, 전경들과 대치하다가 두드려 맞았다. “무술유단자들의 주먹이 굉장히 아픕니다.(웃음)” 90년대 소련이 무너지는 변화 속에서 일단 학교는 나왔다. (그는 나중에 신학교를 다시 입학해서 그곳에서 공부를 마쳤다.) 문화 활동 중심으로 움직였다. 활동을 하다가 문화 사업을 겸하게 됐다. 처음에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사업을 했는데 그 목적들이 점점 희석됐다. 혁명 운동의 한 부분으로 사업을 움직였는데 나중에는 점점 현실적이 됐다. 사업 과정을 겪으면서 원래 목적과 조금씩 멀어졌고 동료들 사이에서는 배신으로까지 비췄다. 당시 같이 활동했던 또래들이 이제 다음 선거때 쯤 국회의원으로 몰려 나올 때다. 지금 각 진영 요직들에 앉아 있다. 새정치연합의 송호창 의원도 그의 함께 했던 학교 선배다. 사업을 계속 하다가 IMF의 파도를 견디지 못했다. 공연 기획과 음향을 담당하는 회사였는데, 취약한 재정 여건에서 살아나기 힘들었다. 무너져가는 과정 속에서 그 자신도 무너져갔다. “아버지가 준 유일한 유산이 정직, 성실인데 재정이 어려워지다보니까 제가 거짓말을 하는 거였어요. 돈을 재촉하면 전화 안 받고 속이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에 내 모습을 보니까 너무 처참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수많은 빚쟁이들이 몰려 왔지만, 그런 문제보다 그는 괴물이 돼버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살을 기도했다. 살아갈 이유를 못 찾았다. 1998년도였다. 아내가 있고. 아들들이 있었다. 처갓집이 독실한 크리츠찬이었다. 장인 어른이 주일날만 되면 그를 데리러 왔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이 손수 차를 몰로 데리려 왔는데 외면할 수 없었다. 효도차원에서 교회에 나갔다. 극심한 고통의 속살을 뚫고 어느 날 하느님이 들어왔다.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학문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었다. 신학교에 다시 갔지만 처음부터 목회자의 길은 생각하지 않았다. 크리스찬이었던 아내는 정신적으로 파멸해가는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묵묵히 기다렸고 인내했다. 아내를 대학교 1학년 때 만났다. 같이 활동했고 당시 민중 가요하던 동아리를 그들이 만들었는데 아내가 초대 회장이었다. “아내는 청교도적인 보수적인 신앙을 지닌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내 집에 피아노가 있어요. 서울 전동동에 살았는데 장미넝쿨 대문이 있는 집에 독수리표 전축이 있었습니다. 당시 독수리표 전축은 꽤 비싼 제품이었어요.(하하) 아버지는 해외를 누리던 건축엔지니어였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빵 폭죽 터지고 이랬던 장면 있지 않습니까? 그런 현장에 있던 분입니다. 저와는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이었죠. 집사람도 음악을 했어요. 아내는 대학교 4학년 중퇴하고 서울예술대학 음대를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때부터 음악활동 시작했고 같이 프로밴드도 만들어서 활동했고요.” 트럭 밑에서 노숙하던 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div align="justify"><table width="50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500" align="absmiddle" src="http://www.allcsn.co.kr/PEG/14295057041304.jpg"> 본드 중독자였던 아이들은 세품아에서 치유를 받고 음악 전문가, 청소년상담사가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음악을 선사하고 청소년들에게 희망 강연을 한다.</td></tr></tbody></table></div> 목회자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목회를 떠맡게 됐다. 지역의 아주 작은 교회의 어느 목사님이 몸이 안 좋아서 물러났다. 그가 신자 4,5명 교회의 담임이 됐다. 현재 목회를 담당하고 있는 예수하늘마을교회이다. 그렇게 여기까지 걸어 왔다. 대학원 때는 목회자로서 확실한 소명이 있었다. 평범한 목회자로 성실히 살리라 생각했다. 작은 교회에서 열심히 목회했다. 목회를 위해 아들의 친구들을 모았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다. 아이들과 허물없이 지냈다. 길에서 마주치면 목사님이라고 부르며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조르곤 했다.  근데 아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물건을 훔치기 시작하고 학교 안 가고 담배 피고 술 먹고. 이젠 멀리서 봐도 인사도 안하고 도망갔다. 교회에 잘 오던 아이 한 명이 아주 안 보였다. 처음에는 그게 가출한 건지도 몰랐다. 이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출을 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동네 건물 계단에서 노숙을 하는 걸 목격했다. 매우 놀랐다. 그 아이를 데리고 와서 집에서 며칠 데리고 있었다. 설득해서 학교에 데리고 갔더니 학교에서 는 아이를 아예 사람 취급을 안 했다. 그는 너무 이해할 수 없었고 분노했다. 아이의 집으로 데리고 갔더니 아이의 엄마가 문을 안 열어주었다. 결국 그가 아이를 보호하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아픈 거예요.” 상처가 많고 고통이 많아서. “결국엔 내가 이 아이들을 돌봐야 되는구나.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 아이의 학교 밖 친구 무리들도 불러 모았다. 공부시키고 같이 놀면서 ‘세상을품은아이들’이 시작됐다. 그 이전부터 작은 동네 아이들에게 세상을 품게 만들자는 뜻으로 일반 아이들과 함께 외국으로 비전투어를 다니고 있었다. 그 이름이 ‘세상을 품은 아이들’이었다. 위기 속 청소년들이 교회에 모이기 시작하자, 이에 반발해 기존에 함께 하던 일반 아이들을 부모들이 데리고 교회를 떠났다. 세품아는 자연스럽게 위기 속 청소년지원단체로 재구성됐다. 위기 속 청소년들이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그들이 갑자기 변화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일탈행동은 그가 접한 새로운 세계였다. 아이들은 절도를 친구로 삼았고, 폭력을 우정이라 여겼다. 본드 흡입은 그가 본 것 중에도 무척 새로운 것이었다. 환각상태에서 자해하는 아이들을 봤을 때는 밤에 잠도 못 이뤘다. 이 아이들을 돌보아야 했다. 아이들이 교회의 중심이 되자 마지막 남은 신도들이 모두 떠났다. ‘이 아이들을 돌보는 게 자신의 사명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몇 몇 신도들만 남았다.     <오프라인으로 발간되는 안전플러스 5월호에 이어집니다> 【Copyrights ⓒ어린이안전신문 기사제보 & 보도자료 <a href="mailto:allcsn@naver.com">allcsn@naver.c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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