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폐지모아 이웃도운 봉사의 달인, 황화익 할머니

30년간 폐지모아 이웃도운 봉사의 달인, 황화익 할머니: 2015.08.17 10:32 입력

조영훈 기자 yhj@allcsn.co.kr

“같이 하던 사람들 챙피하다며 다 빠지고 나만 남았어. 하지만 난 그만두지 못해” <table width="48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480" align="absmiddle" src="http://www.allcsn.co.kr/PEG/14397749438881.jpg"> 한 가득 모은 폐깡통을 보여주고 있는 황화익 할머니.</td></tr></tbody></table>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저변의 힘은 무엇일까? 돈이나 물질보다 가장 중요한 건 공동체 의식이다. 즉 우리네 정서로 말해 ‘정’이다. 협력 연구의 대가인 독일의 벤클러 교수는 “이기주의는 끝났다. 상호간 신뢰에 바탕한 도움이 사회적 발전의 선결 조건이다”라고 말했다. 조건없는 도움과 그로 인해 생기는 상호 존중감이 사회를 결속시키는 강력한 힘이라는 말이다. 실상 그런 사람들이 바벨탑처럼 하늘 높이 치솟은 저 스카이라운지에 사는 경우는 드물다. 필경 우리 주변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고로 옆집의 가녀린 할머니라고 해서 행여나 무시하지 말자. 그가 우리 공동체의 중심축을 지탱시켜주는 작은 거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우리 앞에 떡 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서울 대학로에서 살고 있는 황화익 할머니(78).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는 30년간 빈병과 폐지를 모아 작은 손길이 필요한 이웃들을 도왔다. 30년간의 봉사 기록은 몇 십권 수첩에 빼곡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냥 기록해 놓았다는 그 빛바랜 수첩을 보러 할머니 자택이 있는 동숭동 대학로로 나섰다.    <table width="60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600" align="absmiddle" src="http://www.allcsn.co.kr/PEG/14397749989741.jpg"></td></tr></tbody></table> “나 심심해서 폐품 주으러 가야 되니까 어여 와”. 연락을 취하고 대학로로 떠나는 기자의 핸드폰에 황화익 할머니의 전화번호가 떴다. 빨리 오라는 재촉이었다. 서둘러 만남의 장소인 마로니에 공원에 들어서니 멀리서 붉은색 자켓을 걸친 할머니이 모습이 보였다. 인사를 건네자 대뜸 “밥은 먹었어? 돌아다니느라 배고플 텐데..” 점심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기자의 공복감부터 걱정해주는 할머니에게 살가움을 느꼈다. 웃으면서 괜찮다고 한 후 자택으로 안내를 부탁했다. 빨리 오라고 왜 그리 재촉했냐고 하니 “폐지도 주어야 되고 할 일이 많아서”라며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자택으로 가는 도중에도 할머니의 손은 바빴다. 길바닥에 뒹굴고 있는 병이고 캔이고 눈에 띄기만 하면 작은 손으로 집어 들었다. “눈에 보이는 건 뭐든지 줍는 거야, 오래 하다 보니까 그냥 습관이 됐어 하하.”  집앞에 도착하자 폐품 창고를 보고 들어가라며 기자를 옆으로 끌었다. 같은 건물 내에 보일러실 처럼 보이는 작은 광으로 들어갔다. 불과 2평 남짓한 공간에 빼곡히 폐병과 빈 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보기엔 누추하지만 폐품을 다 가지고 와서 이 광에 다 쌓아 놓는 거야, 그리고 고물상에 파는 거지. ” 폐품 창고를 둘러본 후 계단을 올라 들어선 할머니의 방은 고즈넉하고 아담했다. “지금은 혼자 사니까 좁지만, 집은 다 내 꺼야 하하.” 할머니는 방에 앉자마자 기사가 나온 신문을 책상 서랍에서 주섬주섬 꺼내 기자 앞에 펼쳐 보였다. “이것 봐. 아유 저번 때도 와서 찍어가더니만...어디 갔다오니까 와 있더라고 이것이.” 그렇게 말하는 할머니의 이맛살이 약간 찌푸려져 있었다. 이미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할머니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번거로운 모양이다. 고개를 돌려 벽 쪽을 보니 서울시에서 받은 상패가 보였다. “내가 있던 봉사단체에서 나를 추천했나봐, 그러더니 서울에서 확인한다고 몇 번 왔다갔다 하더니 나보고 서울시로 오랴. 대상 준다고. 그래서 받아왔지 뭐 별거 있나.” 상받은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아유 말도 말어. 상 주려면 돈이라도 같이 주던지. 한 푼도 안주는 거야. 몇 푼이라도 좀 줘야 또 사람들 도와줄게 아냐” 할머니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역력했다. 그는 차가운 금속의 상패를 외면했다.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오히려 주변에서 한 턱 내라고 해서 밥 사주느라고 쓸데없는 돈만 썼어. 사람들도 참...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황 할머니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다. 자녀들은 이미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중년들. 오래 전에 분가해서 모두 각자 잘들 살고 있다. 아들은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찌감치 충남 대덕 연구단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아들은 할머니의 자랑이다. 손자도 지금 명문대학교를 장학금을 받고 다닌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얼마 전 지병으로 남편이 세상을 뜬 이후로 이 고즈넉한 방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30년간 써왔다는 후원수첩을 보자고 재촉하자 “그런 걸 뭘 봐”라고 말했다. 계속 보자고하자 마지못해 건너방에서 가지고 왔다. “1982년, 신영 20000원” 누렇게 빛이 바랜 수첩을 펼치자 처음에 나온 글이다. 신영이라는 할머니에게 2만원을 주었다는 내용이다. 벌써 30년 전 일이다.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폐지 줍는 새마을부녀회 활동가로 <table width="48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480" align="absmiddle" src="http://www.allcsn.co.kr/PEG/14397750236968.jpg"> </td></tr></tbody></table> 강화도에서 태어난 그는 직업군인이던 남자를 사랑해 결혼을 하고 남자를 따라 이곳 동숭동에 터를 잡았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내기는 했지만 그는 항상 바지런했다. 남편 뒷바자리나 하고 자식들 등교할 때 도시락이나 싸주며 만족하는 당시 필부들의 삶은 싫었다. 그는 집안 살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항상 대문을 나섰다.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일지라도 공동체를 위하는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새마을부녀회에 가입했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70년대,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시작된 새마을 운동 일환으로 만들어진 부녀회였다.  새마을부녀회에 가입한 그는 물만난 고기였다. 공동체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던 찰나 그곳에서 활동하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본 것이다. 마침 부녀회 사람들과 거리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했는데 ‘이거다’ 싶었다. 길거리에 널린 폐지를 모으면 그 값을 쏠쏠하게 쳐주었다. 이를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 참 뜻깊은 일이겠다 싶었다. ‘폐지 줍는 할머니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찾아오는 이 없이 어렵게 사는 이웃들이 주변엔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폐지를 주워서 판 돈, 한 푼 두 푼을 꼬깃꼬깃 모았다. 의지할 곳 없는 동네 노인들은 정부미로 하루 하루를 연명했다. 부실한 정부미를 보니 그들이 더욱 안쓰러웠다. 그들에게 쌀도 사주고, 돈도 쥐어줬다. 계룡산에 놀러갔는데 그의 눈에는 깡통만 보였다. 산을 뒤져 깡통 60개를 주워오기도 했다. “아파서 다 돌아가시게 생겼었지. 교회서 할머니한테 2만원을 줬다는데 그 돈으로 병원에 갈까 쌀 살까 고민하고 있더라구. 그래서 내가 그랬지. 쌀은 내가 줄 테니까 그 돈으로 병원 가보라고. 그 후 그 할머니가 나를 볼 때마다 그러더라구. 애기엄마가 준 쌀로 죽 끓여먹고 살아났다고.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짠해지더라구. 큰 보람을 느꼈어.” 계룡산에서 주워온 깡통으로 그 할머니에게 햅쌀을 사드렸을 때를 회상하며 헛헛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할머니가 나중에 중풍 걸려서 꼼짝 못할 때는 머리도 깎아주고 말벗도 돼 드렸어.”라며 눈을 잠시 허공에 두었다. “결국 다 죽었지. 죽었어. 결국.” 임종했을 때는 폐품 판 돈으로 넉넉히 조의금도 전했다. 한 푼 두 푼 모아 쌓인 통장이 15개 <table width="48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480" align="absmiddle" src="http://www.allcsn.co.kr/PEG/14397750477094.jpg"></td></tr></tbody></table> 외롭고 아픈 노인들은 항상 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햅쌀 한 포대가 아니라 인정이었는지 모른다. 찾아오는 이 없는 자신들을 잊지 않고 관심을 주는 그 정이 사무치게 고마웠는지도. 황 할머니가 전해준 돈을 받으며 그들은 이 돈은 한 푼도 안쓰겠다고 , 이 돈을 어떻게 쓰냐며 종종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매일 모은 빈병과 폐지를 판 돈은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단 백원이라도 꼬박꼬박 통장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쌓인 통장이 지금은 15개나 된다. “1985년 신정, 김진영 할아버지 쌀 한말, 자식 없는 노인이라 고기사 잡수시라고 김제학 할아버지 5000원, 1985년 추석에 이아지 할머니 1만원짜리 옷 한 벌씩, 경추자 아들 불구자 라면 1상자 4400원 등등.” 특히 신정, 추석 등 명절날 후원한 기록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남들은 명절이라고 선물 들고 왔다 갔다 하잖우. 그런데 동네 노인네들이 길가에 앉아서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 것만 마냥 쳐다보고 있더라구. 사람이 명절날이면 유난히 더 외롭지. 그래서 고기 한 근이랑 쌀 한말이랑 사드리면서 명절 잘 보내시라고 했지.”  수첩을 다시 내려보며 글씨를 한참 짚어 가다 잠시 멈춘다. 그리고는 이제 생각난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이건 청소부아저씨들이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양말도 챙겨주고 저녁식사도 대접한 거야. 떡국 끓여냈더니 아주 맛있게 잡수시더라구. 그리고 이건 어버이날에 어르신들한테 스웨터 사드린 거고. 옛날에는 먹을 것도 귀했지만 옷도 마찬가지였거든. 요새야 싼 옷이 많지만.” 그 스웨터를 받으며 ‘이건 내가 죽을때까지 안 입고 보물처럼 아낄거야’라고 하던 할아버지도 얼마 안가 저 세상으로 떠났다고 한다.  황 할머니는 부지런히 폐품을 모아 돈이 생기면 독거노인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들을 찾아 얼마간의 위로금을 쥐어 주고 온다. 돈 많은 사람이 보면 그야말로 도토리 키재기 마냥 적은 금액이겠지만 정성어린 마음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부자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있느냐’고 한 안도현의 시구절처럼, 재력을 자랑하는 사람이 그 재력으로 누구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진 못했다. 바둥바둥 살며 내 눈 앞만을 먼저 챙기는 우리들의 모습을 한 번쯤 곱씹게 만든다. 그렇다고 황 할머니가 건강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항상 맨 손으로 폐품을 줍다보니 손가락은 베이고 허리는 굽었다. 다리는 무릎 관절 수술 자국으로 빈자리가 없고 허리디스크, 눈, 치아 임플란트 까지 어디 하나 성한 구석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새벽 4시면 어김없이 눈을 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이런 황 할머니의 열정에 가족들도 일찌감치 동화됐다. 마당으로 폐품을 주워 나를 때면 남편이 함께 들어다 주기도 했다. 황 할머니 옆엔 몇 해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이 더 이상 없고 그의 빈자리는 여전히 허하다. 사람들에게 뭔가를 주는 게 좋아서 하는 거야 30년 동안 폐지수거를 계속 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폐품 팔아서 모은 돈으로 사람들에게 뭔가를 주는 게 보람있어서”라고 답했다. 그게 다다. 힘들지는 않단다.  “그냥 좋아서 즐거워서 힘든 줄 모르고 시작한 게 벌써 30년이 됐지. 그냥 묵묵히 한 거지 뭐. 하지만 몇 번의 고비도 있었어. 남편이 장사하다가 동네 사람한테 속아 쫄딱 망했거든. 그때는 정말 살기도 막막했었지. 그래도 봉사는 계속 했어. 그냥 했어. 내가 하던 거니까.”  외로운 이웃을 도와주는 그에게도 자신을 도와주는 이웃이 있어 외롭지 않다. 때때로 빈 캔을 함께 주으러 다니는 친구 할머니도 있고 포대자루가 차면 리어카에 실어 날라주는 이웃집 할아버지도 있다. 이미 동네에서는 유명인이라 근처 구멍가게에서 박스가 모이면 황 할머니에게 건네준다. 길 가에 떨어진 빈 병을 그냥 못 지나치고 황 할머니에게 가져다주는 사람도 많다. “친구가 많아”라며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다. 황 할머니는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따라온다고 믿는다. “아들이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어. 대학을 수석졸업하고 박사학위를 우수한 점수로 땄어. 손자도 지금 명문대에서 장학금 타고 다니는 것도 다 이렇게 좋은 일 하니까 좋은 일이 또 돌아오는 거라고 주위에서들 그러더라고. 하하” 혼자서 지내기 적적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너무 바빠서 그럴 틈이 없다고 한다. “새벽에 폐지 줍는 일이 끝나면 아침이 돼. 그러면 되면 근처 대학로 마로니에 경로당서 급식봉사도 돕지. 점심때가 되면 종로복지관에 가서 포크댄스를 추고 장구도 치면서 합창도 하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 이래뵈도 노래자랑 1등 출신이야 하하.” 애창곡이 송미나의 ‘웃고살자’라고 한다. 이는 인생 좌우명이기도 하단다. 시종일관 웃는 황화익 할머니는 늘 행복하다고 말한다. 언제까지 폐품을 모아서 이웃을 도울거냐고 물으니 죽을때까지 그냥 하는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적한 방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황 할머니. 남편도 떠나고 가족도 가까이에 있진 않다. 이렇다 할 재산도 없다. 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의 이웃을 모두 가족으로 만들었으니 그는 누구보다도 부자가 아닐까. <table width="48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480" align="absmiddle" src="http://www.allcsn.co.kr/PEG/14397750793030.jpg"> </td></tr></tbody></table><table width="480" align="center" class="center" id="news_image"><tbody><tr><td><img width="480" align="absmiddle" src="http://www.allcsn.co.kr/PEG/14397750904850.jpg"> 대학교에 있는 서울대 병원 내에서 폐지를 줍고 있는 황화익 할머니.</td></tr></tbody></table> [Copyrights ⓒ어린이안전신문 기사제보 & 보도자료 <a href="mailto:allcsn@naver.com">allcsn@naver.c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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